지난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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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당 김윤기 박사 소장전

  • 전시명:Indang's PossessionsⅡ 'Remember to forget’
  • 전시장소:대구보건대학교 인당박물관
  • 전시기간:2008-10-09 ~ 2008-10-26

 

 

인당 김윤기 박사 소장전 <Remember to forget>

 

 

 

며칠 전 동해안에 다녀왔습니다.


입추, 처서, 백로, 추분...절기는 깊어 가는데 무슨 바다냐구요


그렇습니다.


삼복더위 바글대던 인파는 갯벌구멍에 게 숨듯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흰 파도 은빛모래가 어찌나 을씨년스럽던지...


역시 모든 현상엔 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여름 장미는 일찍 시작된 더위 때문에 더 숨막히도록 고왔습니다.


학교 뜰이나 관공서 정원 둘레에 잘 손질된 장미도 그렇거니와 시골집 마당과 버려진 텃밭 가장자리 들장미도 고고했구요,


기찻길 옆 철책에 오려진 덩굴장미의 도발도 급습이었지만 임직순 화백의 날 선 장미꽃잎은 무채색 졸음을 쫓아버리는


방어할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연이어 피어났던 밤꽃은 또 어떻습니까?


그리 고혹적인 미모도 아니요 향기로운 매력도 없이 콩 줄기처럼 죽죽 늘어진 꽃 타래가 초여름 볕의 권태를 담고있다고 할까...


밤꽃으로 뒤덮힌 우리의 야산은 박고서 화백의 쌍계사 벚꽃처럼 춘심을 강요하지도 않고


유영국 화백의 산처럼 냉정하지도 않은 것이 양달석 선생의 산처럼 둥글둥글 희끗희끗 세월 묻은 우리 그이 뒷머리 같았습니다.


그이에게도 자고나면 빽빽이 뻗쳐오르던 숱 많은 머리와 장비 같은 숯검정 눈썹이 있었는데...


세월이란 그렇습니다. 붙잡고 있어야 하지만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리고 싶은 낯붉힐 과거도 있고 잊으려


애써도 아직 때가 아닌지 명치 끝에 붙어 애를 태우는 미련도 있습니다만 모두 되돌릴 수 없는 추억들입니다.


사는 게 다 그렇습니다.


지난 기억들 빛바랜 앨범 들춰가며 지울 건 지우고 남길 건 또 정제된 아름다움으로 남기고자 색을 입혀봅니다.


Remember to forget...

                                                                                                                       


                                                                                                                                대구보건대학 학장  보현 남 성 희

 
 
 

 

 

인당 김윤기 박사

 

경북대학교                 농학과(1967~1974, 학사)
대구대학교대학원       지역사회개발학과 (1984~1986, 석사)
경기대학교대학원       체육학과 (1998~2001, 이학박사)

 


         사회활동

 

대구보건전문대학                                  부학장(1982~1988)
학교법인 근영학숙                                 이사장(1984~1987)
KBS 시청자위원회                                 위   원(1985-1987)
대구광역시 북구청 자문위원                    위   원(1986-1988)
대구보건대학                                         학   장(1988-2002)
대구광역시 사회복지협의회                     부회장(1993~1994)
미주한인회 총연합회 명예자문위원회       위   원(1995~1997)
월드컵유치 범국민운동본부                     고   문(1996~1997)
대구경북지역 학장협의회                        부회장(1996~1998)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위원회     위   원(1996-1997)
전문대학 학장협의회                               이   사(1999∼2002)
한국청년지도자연합회 자문위원회            위   원(1999~2002)
사단법인 북구문화원                               이   사(1999~2002)
대구지방검찰청 범죄예방 위원회              위   원(2000~2002)
대구경북지역협의회 운영위원회               위   원(2000-2002)
전국보건계전문대학장협의회                   부회장(2001~2002)
학교법인 영송학원                                  이   사(2001~2005)

학교법인 배영학숙                                  이사장(2002~2005)

(주)홍 성                                                회   장(2005~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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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ang's Possessions'Remember to forget’

인당의 두 번째 소장전

 

 소명숙

인당박물관장

 

서희주

철학박사 미학전공


 

   인당의 두 번째 소장전은 잊혀져가는 역사와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예술가들을 되새기며 그들의 삶과 미학적 의미를 짚어보는 시간으로 마련되었다. 이번 전시는 고된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서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한국적 정서와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열정을 불태웠던 작가들로 구성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의 이름은 입에서 맴돌기만 하고 그들의 작품은 경제적 가치물로만 남아 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수고하고 그들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남겨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그들이 전하는 잔잔한 삶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그 속에 담긴 가족, 고향,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을 중심으로 기획하였다.

이 전시의 작품들은 대략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그 시기는 한국전쟁이 끝난 후 전쟁의 아픔을 치유하고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던 때였다. 60년대의 산업화와 70, 80년대 고도성장, 그에 뒤 이은 민주화 열망은 현재 풍요로운 삶의 밑거름이 되었고 혼란의 시대에 격동의 세월을 살아낸 예술가들은 시대적 상황을 가슴으로 느끼고 그것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 그러한 시대와 삶의 면면들을 미학적으로 숭화시킨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헤어져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담은 작품들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생활하던 작가들이 자신의 고향 이미지를 한국적인 정서와 색채로 표현한 작품들을 볼 수 있을 것이며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하였던 작품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마련된 인당의 두 번째 소장전에서 관람객들이 무거운 삶의 짐을 잠시 놓고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1. 가족 그리고 사랑

 

   한국전쟁으로 우리는 가족의 사랑과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아픈 기억들은 잊혀지고 가치관은 변해서 이제 가족의 결속과 사랑이 예전 같지가 않다. 더욱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사라져감에 따라 그나마 남은 기억마저 역사 속에 묻히게 될 것이다. ‘가족 그리고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통해 우리는 가족과 소종했던 옛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먼지 묻은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듯이 가족과의 아름다운 순간을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으로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하면서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작품으로 표현한 이중섭, 실직한 아버지들의 모습을 가슴 저리게 그리고 있는 박수근,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고 홀로 화실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작품에 담았던 장욱진, 사랑과 평화, 인류애를 작품에 담고자 노력했던 윤영자와 최종태의 작품은 감상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들로부터 사랑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가족은 우리 삶의 버팀목이며 사랑은 우리의 희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2. 깊은 그리움과 서린 고향과 한국적 정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항상 가슴 깊은 곳에 고향을 안고 산다. 고향의 색, 냄새, 모습 등은 머나먼 타향에서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비록 실향민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근원적으로 떠나온 모태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고향의 추억을 담은 작품들은 우리에게 깊은 동질감과 감동을 줄 수 밖에 없다.

파리와 뉴욕을 오가면서 작업에 열중했던 김환기의 작품에도 그러한 고향의 색과 모습이 묻어난다. 그는 고향의 푸른 하늘, 푸른 바다를 생각하면서 특유의 푸른색 화면을 만들었고 달과 새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향수를 달랬다. 윤중식은 실향민으로서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작품에 담아내면서 가슴 깊은 아픔은 표출하고 있다. 그가 그린 풍경은 항상 고요하고 평화로운 고향의 모습이지만 동시에 고향에 대한 애틋함과 아련한 슬픔이 배어있다.

이항성은 한국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매체의 활용으로 변종하는 서양의 기법으로 각각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최영림은 황토와 모래 작업을 통해 향토적 이미지를 시각화했고 변시지는 항토빛 배경과 검은 먹빛의 그림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서양의 여러 재료를 이용하여 우리의 정서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우리의 미의식을 표출하고자 했다. 우리는 이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고향이 안겨주는 넉넉함과 한국적 이미지의 다양한 해석들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3. 자연과 생명의 울림

 

   우리는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존중하는 삶의 태도를 지향해왔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자연 개발에 따른 경제적 가치를 추구해왔고 이 경제논리는 우리를 병들게 했다. 자연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다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전시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화면 가득 담아서 그것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있는 작품들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들로부터 우리는 자연과 조화로운 삶으로의 초대를 받게 될 것이다.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담아냈던 문신, 박고석, 임직순은 독특한 작품세계로 한국 현대미술사의 획을 그은 작가들이다. 문신은 강한 현대성으로 생명의 이미지를 조형화하는 작가이다. 그는 생명의 숭고함과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형태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자연의 섭리를 조형화하고 있다. 산의 화가 박고석은 우리 산이 가지고 있는 힘찬 기개를 화폭에 담았으며 임직순의 장미에는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은 오늘날 에콜로지에 대한 현대인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들이 표현한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으로부터 우리는 더불어 사는 철학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인당의 소장품은 우리 역사를 읽을 수 있는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이번 두 번째 소장전은 과거의 고난과 아픔, 행복과 기쁨의 흔적으로부터 한국미술의 조형의식과 예술가들의 예술혼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와 아울러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를 통하여 서구와 차별화되는 우리의 미의식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함축한 보물창고

 

박이찬국

갤러리 눈 관장,

PK미술투자연구소 소장

 

   반도체가 IT분야에서 한국을 선진국으로 이끌었듯이 문화, 좁게는 미술분야에서도 한국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반영하듯 아트펀드, 아트뱅킹, 아트시스템 등 다양한 개념의 미술상품과 트렌드가 한국 미술계에 등장하고 있다. 바야흐로 이제는 미술이 국제적인 경쟁력이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은 문화선진국의 길로 접어드는 길목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상당히 긍정적이다. 문화에 대한 애착심이 미술품 수집으로 이어지는 것은 미술품에 대한 투자 이전에 진정으로 미술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깊기 때문이다.

 

   올해 봄 대구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박물관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대구보건대학 인당박물관을 찾아갔다. 대학 캠퍼스에 들어서자 다른 대학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조각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조각품들은 공간에 알맞게 배치되어 있어서 구성한 이의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박물관 건물은 누가 이게 박물관 건물이예요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첫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외관부터 눈에 띄었다. 외부디자인부터 박물관으로 설계가 되었다는 느김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시원하게 트인 높은 공간이 박물관을 염두에 둔 설계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했다. 높이에서 주어진 공간의 빛과 관람자를 위한 자연스런 동선에서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국제적인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여느 박물관보다 아름답고 훌륭한 박물관을 보면서 보물 같은 박물관이 있어서 대구가 참 행복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부 전시장을 둘러보니 소장된 다양한 작품들과 관람자를 배려한 공간구성은 그냥 박물관이 아니라 이곳을 세울 설립자의 소중한 땀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일반적인 사설박물관들은 기존 공간을 이용하여 박물관으로 변경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구보건대학 인당박물관은 설계부터 박물관으로 시작하여 외부 정원과 조화를 이룬 전시장 자체가 보는 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대학이라는 공간에 좋은 박물관(미술관)을 가진 곳은 국립대학교를 제외하고는 몇 군데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의 많은 대학들은 자체 박물관(미술관)을 가지고 있으며 학교보다도 박물관(미술관)이 더 유명하기도 하다. 이들 대학이 소장한 작품이 중명하기도 하지만 작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단순한 예술작품에서 투자 상품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소장한 작품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가치가 높아질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더욱 더 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때 소장자의 문화적 안목은 더욱 빛난다.

2006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미술품이 투자 상품으로 급부상했다. 많은 부를 벌어들이기 위해 자산가들은 미술품을 사들이고 있다. 하지만 가치 있는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은 돈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씨앗을 뿌리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힘들다. 이런 진정성이야말로 미래의 미술애호가들까지 배려한 문화마인드라고 할 수 있다. 인당의 소장품들은 이런 문화마인드에서 결집된 것이며 미래 미술애호가들을 위한 우리의 중요한 자산이다. 특히 작고 작가들의 드로잉작품들과 대표작품들이 선보여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로 문신 선생님의 드로잉작품들이나 나혜석 선생님의 유화작품, 장욱진 선생님의 작품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작품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문신 선생님은 필자 개인이 그 인품과 작품에 감동을 받아 미술을 전공하게 된 은인이기도 하다. 문신 선생님은 드로잉 작품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한국전쟁 중에 분실된 드로잉작품을 찾았을 때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또한 선생님은 드로잉은 단순한 스케치가 아니라 실제 작품이 만들어지는 기본적인 토대이며 영감이라고 늘 강조하셨다. 실제 문신 선생님의 드로잉이 대규모 행사의 포스터로 제작된 적도 있었다. 조각 작품을 보고 대칭의 모습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드로잉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작품의 참뜻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나혜석 선생님의 작품을 말하자면 실제 남아있는 작품이 몇 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초 여류서양화가이자 독립운동가, 소설과, 시인, 문화평론가로 당대 최고의 엘리트 신여성으로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그녀의 이력 자체가 한국근대여성사로 남아있다. 가족들과 나무, 새 등 가장 한국적인 여유와 자유로움을 그린 장욱진 선생님의 작품들은 지금은 발견하기 힘든 우리나라의 고유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평소 쉽게 보기 힘든 작품까지 나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김환기 선생님의 드로잉과 한국적인 색채의 작품들, 후반기에 등장하는 점 · · 면 시리즈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감탄을 넘어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박수근 선생님의 대표작 중 50~60년대 우리나라 삶을 그대로 표현한 실직이란 작품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영원히 기록될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당시 전쟁 후 우리 사회상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 미술사적으로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삶을 작품으로 표현한 박수근 선생님은 드로잉만으로도 그 특징이 드러나며 가난했던 작가의 미지가 그대로 떠오른다. 변종하 선생님의 문양을 이미지화한 작품은 쉽게 보지 못할 작품들로 귀한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김영중, 윤중식, 최영림, 박고석, 황염수, 최종태, 천경자, 손응성, 변시지, 윤영자 등 우리나라 근현대작가들의 대표작품들이 망라된 전시는 아마 앞으로도 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각국의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들은 좋은 작품을 소장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더 나은 문화적 혜택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장품이 해외로 나가 전시될 때 문화 수출의 효과를 주기도 한다. 그 좋은 작품은 작가의 열정과 예술혼이 결집된 것이다. 그런 작품을 소장한 박물관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열정을 그대로 박물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한다.

 

   대구는 우리나라 근현대회화사에 중요한 자리매김을 하는 곳이다. 근현대 미술가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지만 회화의 중요한 역사가 존재하는 지역이다. 그 문화적 저력은 지역의 미술애호가, 작가, 평론가들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에서 성숙되어 왔다. 앞으로 대구보건대학처럼 우리나라 미술사에 큰 획을 긋는 전시들이 꾸준히 열리고 훌륭한 소장품들이 일반대중에게 공개된다면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문화를 접하는 기쁨을 주는 공간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박물관

   뉴욕의 모마라 불리는 뉴욕현대미술관은 세계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미술관이란 명성으로 유명하다. 뉴욕현대박물관의 소장품들이 늘어 가면 갈수록 모마의 현대미술에 대한 자리매김은 커지고 있다. 영국 런던의 현대미술의 메카로 불리는 테이트모던박물관이 미술계에 회자되는 것은 독특한 전시방법 때문이다. 테이트 모던은 이제까지 박물관이 택했던 연대기적 서술이 아닌 정물, 풍경, 인물, 역사라는 네 가지 주제별 전시를 통해 현대미술을 보여주고 있다. 관객들의 반응은 역사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있다는 비난에서부터 미술을 대중에 가깝게 다가가게 했다는 평가까지 다양하다. 어쨌든 테이트 모던 측은 20세기 이후의 작품들만으로도 미술관을 홍보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처럼 대구보건대학 인당박물관은 뉴욕의 모마나 영국의 테이트모던처럼 대구라는 도시에서 출발하여 세계적으로 한국 예술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기를 기대한다. 국내에서 국제적인 비엔날레가 두 개나 열리고 있고 세계 미술무대에 한국 예숙은 문화적 성숙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예술작품을 언제든 볼 수 있고 그 작품들이 잘 소장되어 후대에 깊은 영향을 끼쳐 대구보건대학 인당박물관이 대구시민들 뿐 아니라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새로운 전시의 형식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되기를 기원한다.

 

 


 

 

현대조각의 문화적 지평

 

오의석

 대구가톨릭대학교 환경조각과 교수

 

   조각은 소리가 없다. 그저 묵묵히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조각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조각이 전하는 묵시(默示)를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양괴(量傀)와 공간의 구축 앞에서 온 몸으로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선 발걸음을 멈추어야 하고 오랜 시간 눈길을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각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 아니다. 조각에는 여전히 비밀스럽고 감추어진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일찍이 허버트 리이드(H. Read)는 조각이란 입체를 만드는 예술이라고 정의하면서 조각의 공간 점유적 속성을 밝힌 바 있다. 조각은 그림과 다른 삼차원의 입체이기 때문에 그 실체 앞에 마주선다 하더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측면과 후면,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예민한 감상자가 아니라면 그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상상하고 조합하는 일이 쉽지 않다. 형태를 윤곽이 아니라 두께로 느끼며 파악하는 힘, 단순한 공간 지각의 차원을 넘어서 작품을 부피와 중량으로 느끼는 감각적 숙련이 감상에 요구된다. 거기에 더하여 형태를 구성하는 재료의 물성과 표면의 재질을 마치 손으로 만져보는 것처럼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때 감동의 깊이는 더해진다.

 

   조각의 역사는 매우 길다. 그 오랜 역사 속에서 조각이 감당해 온 짐은 꽤나 무겁다. 다산과 풍요를 빌기 위한 부적(符籍)으로, 생존을 위한 필요에서 소원 성취의 수단으로, 신의 형상을 이미지로 구현하려는 시도로서 조각은 분에 넘치는 무리한 역할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온갖 노력이 조각을 통해 나타났다. 고대 역사에 나타나는 거대한 분묘조각과 대형 모뉴멘트는 기록과 증언의 차원을 넘어서서 형상을 통해 영원의 문제를 해결하려했던 의지의 표출로 볼 수 있다. 영원에서의 추구, 그것은 인간의 오랜 숙제였다. 조각을 통해 영원을 실현하고 싶은 인간의 뿌리 깊은 열망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형상은 오랜 조각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조각사의 초기에 인간의 형상은 영적인 존재와 대상으로 나타났고, 오랜 세월 동안 피와 살을 가진 인성적 대상으로 추구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 순수한 조형의 대상으로 분석되기 시작하였다. 최근의 실험적인 작업에서 인간은 조형을 위한 재료와 작업을 구성의 한 방법으로 그 위상이 설정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조각가의 신분도 변하여 왔다. 물질과 형태에 혼을 불어넣는 자로서 형상을 통해 구복과 강복의 역할을 하는 주술사에서 오랜 세월 장인의 신분으로 추락하였고, 시대의식을 대변하고 예견하는 선견자로 부상하였는가 하면, 소통이 어려운 형태 실험과 물성의 탐색 속에서 미의식의 지평을 확장해가는 문화적 엘리트 집단으로 구별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현대도심의 생활공간과 거리의 환경장식가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제 오늘의 조각은 미술관과 조각공원을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문화적 아이템이 아니다. 도심, 거리, 광장, 주거 단지 그리고 생활공간 안으로 찾아와서 우리와 만나고 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며 소통을 원한다. “당신에게 나는 무엇입니까? 나의 이야기를 좀 들어 주심시오.” 우리는 도처에게 조각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과 요청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조각의 전체역사를 돌아 볼 때, 놀라운 변화이며 도약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근대조각 전개에 있어서 제 2세대로 구분되며, 현대미술계의 원로로 존경받는 조각가의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대변할 수 있다. 한국 근대조각의 짧은 역사 속에서 비중있는 위치를 점하는 작품들이다. 대부분 인체의 형태가 주된 태마이며 자연과 생태의 구조를 추상화한 작품도 있다. 조각가의 눈을 통해본 인간의 모습과 자연의 형태가 펼쳐지고 있다. 인체가 기하학적인 면으로 해석되어 재구축 되는가 하면, 유기적인 양을 가진 생명체로 강조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의 전통성에 뿌리를 두면서도 현대적인 조형양태로 체현된 한 소녀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눈은 따뜻하고 푸근하다. 자연 친화적 재료인 돌과 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브론즈 등, 재료의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음도 우리의 기쁨이다. 만물을 동원하여 형상의 세계를 꽃피운 조각가의 노작 앞에서 20세기 추상조각의 문을 연 조각가 브랑쿠시(C. Brancusi)의 말이 떠오른다. “육체는 노예처럼 일하고 정신은 황제처럼 군림한다.”조각이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노동성과 함께 작품에 담긴 고귀한 정신성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한국 조각문화의 지평을 넓혀온 조각들 앞에서 먼저 작품에 스며든 조각가의 땀과 수고를 감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작가의 눈을 통해 바라본 인간과 자연의 모습에서 한 시대의 정신, 조각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형태로 빚어지기 위해 동원된 만물의 합창을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자, 무엇보다도 경청의 마음을 가진 감상자들에게 조각은 더 이상 묵시(默示)가 아니다. 그 비밀스러운 언어를 이해하며 소통할 수 있음은 오늘의 조각 전시와 문화가 주는 선물이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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