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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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 옛 공예 컬렉션

  • 전시명:탐미와 서정
  • 전시장소:대구보건대학 인당박물관
  • 전시기간:2007-04-27 ~ 2007-05-20

 

 

보현 옛 공예 컬렉션  <탐미와 서정>

 

 

매혹적인 혹은 정 깊어지는 미의 나라로의 초대

 

생명의 빛이 스프링보드처럼 튀어오르는 봄,제가 이십 여 년 애지중지 모은 것들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회를 열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고미술품에 대한 관심은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칠보가락지를 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왜 중고를 사주느냐"고 물었더니 골동품이라고 했는데 그 은의 감촉과 칠보의 색감에 매료되어 특히 장신구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컬렉션을 할 때, 적당한 가격대는 제 선에서 구입하지만,고가나 진위의 감정이 필요할 때는 언제나 남편의 도움이 컸습니다.


컬렉션을 투자라고 생각하거나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닌,우리의 문화를 아끼고 전통을 보존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널리 소개하고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창조에 보탬이 되는 것. 이것이 컬렉터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이 아닐까요? 컬렉터들도 선택과 집중으로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해서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야 다양한 장르의 문화가 골고루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은 감상하는 동안에 경험하는 기쁨, 그 자체를 본질적인 가치라고 말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유물이다 여기지 말고 대화를 나눠 보세요. 애정의 눈길을 보낼 때 살아있는 생명체가 될 것입니다.
사람의 정신과 삶이 결국은 문화이며,좀 더 가치 있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 문화를 가꾸는 일일테니까요.

 

대구보건대학 학장   보현  남 성 희

 


I am very pleased that during this spring, when the light of life soars like a springboard, I can display my precious collection worth over 20 years of my life.

 

I believe that antique collection is not prirnarily a form of investment or a source of personal enjoyment. More importantly, collecting antiques allows one to showcase culture and preserve traditions in order to ultnnately contribute to the creation of a new culture.

 

It is said that the intrinsic value of a work of art is the joy that we experience when we appreciate it. Do not simply think of it as a heritage but try to create a conversation withit. Then, it will be a living substance as you turn your affective eyes on it. Ultimately, the spirit and life of the human represents culture and making life more valuable and beautiful would consequently contribute to the cultiva仕on of our culture.

 

   Nam, Sung Hee

Dean of Daegu Health Colle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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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남과 여,여와 남;

그들의 앙앙거림과 단꿈꾸기

 

김열규

서강대 명예교수

 

   1) 안방과 사랑방

   안방과 사랑방은 우선은 한국의 남녀를 공간을 따라 갈라 놓는다. 그러나 그 ‘안/사랑’ 이라는 공간의 '두얼리즘',곧 ‘둘로 갈라서기’는 남녀 간의 위상,지위, 처지만이 아니라, 그 감정이며 정서, 감각이며 사고 등에 걸친 인간성의 두얼리즘을 유도하고 더 나아가서는 문화며 사회에까지 걸쳐서 갖가지 대비를 낳게 된다. 안방과 사랑방은 한국적인 남녀 두얼리즘의 산실이고 시작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안채/바깥채’의 대비를 두고도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안사람은 아내고 안주인은 요즘말로 하면 주부다. 바깥사람은 남편이고 바깥주인은 가장家長이다. 그러기에 안은 여성이고 바깥은 남성이다. 한데 이 같은 '안/밖’의 공간 대비는 ‘아래/위’며 ‘우/좌(바른 편/왼편)라는 방위의 대비를 낳는 다. 상/하’ 가 권력이며 권위의 우열반轉을 결정짓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좌/우’ 도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에서는 우측은 바른 편 또는 오른 편이라고 한다. 정당하고 올바른 방위라는 뜻이 간직되어 있다. 좌측과 같은 왼편이란 말에서 ‘외’는 ‘외로 된' 이란 말이 알려주고 있듯이 ‘잘 못’ 이란 뜻과 무관하지 않다. 중세기 국어에서 ‘외다’ 면 ‘그르다’ 와 같은 뜻이다. 또 ‘외대다’라는 동사는 바른 말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한데 종교의 원리나 신성함이 문제되면 세속 사회에서 우쭐대던 우는 땅바닥에 내리박히고 만다. 좌는 거룩함이고 신다음인데 비해서 우는 극히 속되고 막된 것으로 주저앉고 만다.

   부부의 무덤이 나란히 있을 때,남편은 으레 좌측이다. 조상의 기제사를 모시면서 지방을 쓸 때, 남성 어른이 당연히 왼편에 좌정하게 된다. 이렇듯이 우리들은 방위와 공간의 대비를,

 

안 / 밖

아래 / 위

우 / 좌

 

이와 같이 설정하게 되는데 그것은 필경 바로 ‘여/남' 사이의 대비가 된다.

 

 

   2) 또 다른 하고 많은 남녀 간 대비들

   남녀 사이의 대비가 일차적으로 안방과 사랑방 사이의 공간의 대비에 걸려 있음을 이로써 헤아리 게 되는 것이지만 한국 전통문화에서는 또 다른 재미있는 남녀 간의 대비를 찾아내게 된다.

 

봉황 / 참새

용 / 뱀

호랑이 / 고양이

늑대 / 여우

 

   이들 대비는 말할 것도 없이 남녀 간의 대비가 동물의 대비로 바꿔진 것이다. 여기서도 남녀 간의 우열이며 상하는 분명히 드러나 있다. 여성 측의 동물들은 감히 남성 쪽의 동물들과 비교하자고 들 수가 없다.

   조선조의 한 전설에서는 웬 이름 높은 선비를 짝사랑하던 여성이 죽어서 하필, 뱀이 되어서 사모하던 그 남자의 신주를 칭칭 휘감고 들더라고 했다.

   이건 어떻게 보아야 하는 걸까? 일단은 눈을 흘기면서 못된 집념이라거나 아니면 독살 맞은 광기라고 흉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조에 그만큼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내세운 여성이 있었다고 하면 어떨까?

   한국 여성의 근대화의 화사한 상징일 수 있는, 나혜석 같으면 박수를 칠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한데 늑대/여우의 대비는 익살맞다. 이 대비는 '사나움과 포악함/ 교활함과 간특함’의 대비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양쪽 다 좋을 것은 한 치도 한 푼도 없을 것 같다.

   한 시대 전만 해도 아들 가진 부모는 ‘세상, 여자 젊은 것들 다 여우니라’면서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했고 딸을 둔 부모는 ’온 세상 젊은 사내놈들 모조리 늑대니 잡혀 먹히지 않게 조심해’라고 경고했다.

   자, 그러니 그전 시대의 한국인은 누구나 늑대와 여우의 트기였고 그러자니 그들은 ‘늑우’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특종 동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꼭 늑대와 여우의 대비를 흉측하게만 볼 건 아니다. 그들 대비를 ‘용맹함/영특함’의 대비로 볼 여지는 얼마든 있고 보면 우리들 누구나 ‘늑우’이가 얼마나 다행한지, 모를 일이다. 사내의 용기와 여성의 드밝은 머리가. 그리고 남자의 완력과 여성의 가슴이 하나로 어울리면 그야말로 천생연분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천만세! 만 만세!, 이렇게 소리쳐도 좋다.

   방위와 동물의 대비를 낳은 한국의 남녀 관계는 또 다른 대비를 줄줄이 엮어내고 있다.

 

따비 / 호미

도리깨(타작) / 작대기(털기)

연자매 / 방아확

논(주식,主食) / 밭(부식, 副食)

 

   이처럼 농사짓기에서 그리고 농사 기구에서도 남녀 간의 대비가 엄연하게 제 구실. 제 몫을 다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 남녀의 대비 사이에 ‘주/부’ 또는 ‘대/소’ 등의 대비가 있음을 보아내게 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앞에서 이미 우리는 늑대/여우의 대비에서 보람 있는 대비를 꺼내 보았듯이, 이 농사의 대비에서도 역시 적극적인 면을 찾아내게 된다. 거기에는 물리적으로 약한 자에 대한 강한 자의 배려가 있음을 보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사내들의 정이 거기 괴어 있다면 허풍일까? 그렇게 좋게 본다면 이들 농사의 대비로 우리들은 결국 강한 자/ 약한 자 사이의 상호 보완과 협동을 말해도 괜찮을 것이다. 매우 근사한,따뜻하고 푸근한 것이 거기서 느껴진다. 안온한 정서가

마치 아랫목 같다. 이 같은 온전한 생각은

 

(긴)담뱃대 / 자

지게 작대기 / 바늘

 

이들 일상생활 용품의 대비에서 더욱 더 확연해진다. 사랑채에서 울려나는 담뱃대 터는 소리는 힘깨나 쓰는 권력일 수 있다. 안방에서 자로 옷감을 가능하는 손놀림의 율동은 보호와 안락의 척도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들 두 겹의 생활 용구의 대비에서 어느 한 쪽 빠지면, 전통 한국은 바람 앞의 담뱃재가 될 것이고 자로 말아낸 천 조각의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생활용품의 남녀 대비는 물론 이에 그칠 수 없을 것이다. 가령 고려 가요 중의 ‘사모곡(思母曲)’에서는 어머니/아버지의 대비가 낫/호미’의 대비로 잡혀져 있는데

 

‘호미도 날이지만 낫같이 들 까닭이 없습니다

아어지도 어어이시지만 어머님 같이 사랑이 클 수 없습니다. ‘

 

라고 말하면서 어머니의 사랑이 낫에 견주어지고 아버지의 사랑은 호미에 견주어져 있다. 그것은 분명히 어머니/아버지의 대비에서 어머니가 우위에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의 보람이 아버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태산 같다는 것이다.

   고려도 그 이전의 삼국 시대도 소위. 가부장제 사회 또는 부권乂權 사회이었기에 이 사모곡은 아주 돋보이고도 남는다. 그러기에 여기서도 남녀 사이의 대비가 필경 조화와 타협을 지향하면서 남녀 간에서 비로소 생김직한. 서정의 아름다움, 나아가서는 인생살이의 아름다움을 탐하고 있었음을 능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화 한 폭을 매우 재미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림 아래쪽의 앞에서는 사내가 겁을 먹고는 허겁지겁하고 있다. 호랑이가 돌연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한데 그림 가운데서는 전혀 다른 정경이 그려져 있다. 으르렁대며 나타났을 커다란 호랑이가 젊은 여인에 안기다 시피 하고 몸을 내맡기고 있는 것이다. 호랑이가 아니고 고양인가 하고 다시 들여다 보지만 역시 호랑이다. 그것도 대호大虎다. 한데도 여인은 사랑스레 맹수의 머리를 애기 다루듯 만 져주고 있다니! 이게 무슨 변인가 말이다.

   이게 도대체 뭘까? 가부장도 바깥양반도 필경 위대한 모성 앞에서는 무릎 꿇고 은혜를 청하고 사랑을 청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필자는 보고 싶다. 그것은 필경 양자의 평화로운 공존에 이바지할 것은 뻔하고도 남는다.

   호랑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이미지는 어쩌면 당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성이 스스로에 부친 꿈과 남성이 여성에 부친 꿈이 어울려서 맺혀 있을 것 같다.

   전통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그 아름다움과 그 맑고 깨끗함으로 칭송되었다. 머리꼭지에서부터 다리 끝까지 여성의 외모는 미술작품이다시피 했다.

   쪽진 머리에는 은비녀며 옥비녀가 꽂혀 있었고 뒤꽂이로는 빙허각 이씨가 그의 책. 규합총세에서 ‘연봉잠’, 이를 테면 ‘연꽃 봉우리 빗’이라고 이름붙인 구슬 빗 말고도 은 귀이개가 은근하게 돋보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다. 귀에는 '명월 구슬’ 이라 일컬어진 귀걸이가 훤하게 둘레를 밝히고 저고리 앞가슴에는 호박이 달린 오색 노리개가 눈부셨다. 지척에는 은장도가 영롱했고 저고리 소매 끝의 팔목에는 주작이라고도 일컬어진 다섯 빛 비단 팔찌가 영롱했다.

   발은 발대로 또 엄청나다. 열두 폭 주름치마 자락 아래로는 꽃무늬 새겨진 당혜가 아니면 구름무늬 아로새겨서 비단실로 짠 ‘사혜’가 보일 듯 말듯 보는 이의 눈길을 살로 잡았다. 이처럼 아름다움의 결정체이기에 그래서 우아하고 다사롭기에 우리의 예 여인들은 비로소 호랑이도 곱게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대례복 차림에다 머리에 족두리 쓰고 얼굴에는 연지 찍고 곤지 찍은 신부의 모습은 또 어떤가!

   그 머리 모양, 그 얼굴 모양 전체로는 갓 피어나려는 꽃봉오리다. 족두리의 6각형 맵시는 바야흐로 벙긋하게 벙글 꽃 몽우리다. 연지 곤지는 바야흐로 움트려는 꽃순이다. 이른 봄. 불그레하게 고운 빛을 띠고 있는 꽃순이다. 만일 그 머리에 꽃구름 무늬 아로 새겨진 옥비녀가 꽂혀 있다면 색시는 그만 혼자로도 화사한 꽃밭이 될 것이다.

   이 같은 순들이 돋아 오르고 이 같은 꽃망울이 피어나면 온 세상은 봄이 된다. 남성 세계에도 비로소 봄이 찾아들 것이다.

여성은 꽃이라고 했다. 사내는 나비라고 했다. 물론 여기서도 여성에게는 피동적인 기다림 뿐이고 사내라야 사랑의 능동적인 주체라고 남녀간의 대비를 좋지 않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꽃 없는 나비는 그 존재가 위험해진다.

   나비 없는 꽃은 그 존재성을 이룩해 낼 수가 없다. 남녀가 세상 살기를 이처럼 하라고,이처럼 사내와 여인이 서로 필수불가결이 되게 하라고 우리네 조상들은 남녀의 대비를 나비/꽃’의 대비로 그려 놓았다.

 

   3) 천지의 조화,우주의 화음 같은 것

   그 같은 남녀 사이에 있음직한 삶의 미학과 서정성은 다음과 같은 대비에서 가장 멋지게 귀하게 결정을 일구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니고,

 

하늘 / 땅

하늘 / 바다(물)

해 / 달

 

이런 우주적인 대비에서 드러난다. 이 대비에 함부로 또는 일방적으로 우열이며 상하의 대비를 덮어 씌워서는 안 된다. 이 대비는 우주의 섭리고 대자연의 질서다. 우주적인 조화고 화음이다.

   땅이 하늘을 떠받들고 우러르면 하늘은 풍요의 비로 그에 응답한다. 땅이 없으면 하늘은 제 구실을 잃고 만다.

   물론 앞에서 보인 몇 가닥의 남녀의 대비에서 페미니즘을 위해서는 불리하고 편찮은 이야기를 얼마든지 꺼낼 수 있다.

   지금껏 흔히들 그렇게 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 모든 대비가 오늘날의 페미니즘의 처지에서는 못 마땅한 것, 꺼려서 도려내어야 할 것 등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도 전적으로 부인하기는 쉽지않을 것 같다.

   안방 살림을 치장할 각종 장이며 농이며 궤 그리고 함지들은 이럴 때, 무슨 말을 우리에게 건네주고 있을까 궁금하다

   그것들은 한편에서는 단출하고 투박하다. 서툰 듯이도 보인다. 그러나 거기에는 소박미가 은근히 묻어 있다. 그것은 지나간 시절, 안방마님들이, 우리 어머니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신들을 스스로 가꾼 모습이다. 근면하고 바지런하고 그런데도 근검절약할 줄 알았던 그분들 미덕이 차분하게 거기 궂은 일. 고된 일 가리지 않고서 식솔들의 뒷바라지에 몸 바친 우리의 여성들의 마음이 거기 있다. 그것을 고요한 열정이라고 불러서 틀릴 것 없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그 가구들은 화사를 극하고 섬세함의 극치에 오르고 있다. 전체 디자인을 비롯해서 문양과 금속 장식품은 한국적인 공예의 미학의 절정에 다다른다. 그것은 그 분들이 우리들 세상이 그리고 살림살이가 빛에 넘치기를, 환하게 빛나 있기를 바란 때문이다.

   앞의 것이 갖는 소박미에 견주어서 이 후자를 현란미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철 베 옷 입고서는 일에 몸 바치느라고 햇빛에 그을고 땀에 저린 얼굴로 은근히 미소 짓던 우리 어머니가 계시는 한편으로는 집안 큰 경사에 환하게 파안대소하시던 어머니가 거기 계신다.

   그러시면서 그분들은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던 남성들 달래고 북돋우면서 남녀 간에 온전히 조화가 잡힌. 인간 사회를 꾸려온 것이다. 세상을 더 없이 곱게. 더 없이 정겹게 또 아름답게 가꾸어온 것이다.

   이건 오늘날 우리들에게 너무나 큰 교훈이다. 그 삶의 서정, 그 생의 미학은 박물관에 길이 소장 되고도 남음이 있다. 실제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생의 철학으로 살아 움직여서 마땅할 것이다.

   남녀 동권이라면 투쟁이 그리고 경쟁이 또는 다툼이 앞장서곤 하는 일부의 페미니즘의 시각에 조금은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남녀는 언제나 또 영원히 공존이지 경쟁도 투쟁도 아니기 때문이다. ‘옛 것을 보도 새 것을 배운다’ 든 그 속담이 새삼 아쉽다.

 

 


 

 

옛 생활용품의 통해 본 색채미학;

맞섬과 어우러짐

 

김 성 종

색채연구가

 

손 영 학

인당박물관 큐레이터

 

   남아있는 유물을 살펴봄으로써 이미 사라져버린 시대의 살림살이와 그들의 미의식과 물건에 얽힌 땀과 웃음, 눈물, 한숨까지를 짐작해보는 것은 그 실체는 사라져버리고 땅 위에 남긴 족적을 좇아 길을 따라가며 살피는 것처럼 흥미로운 일이다. 그 방법은 유물의 쓰임새며 쓰던 계급적 특장 유물의 조형적 검토, 소재의 채취와 제작, 또는 유통경로, 시대적 변화, 문화적 파급효과와 전파경로를 따라 흐름을 추적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테지만 여기서는 조선시대 생활용품에 쓰인 색채의 특징을 통한 그 시대의 미의식과 정서를 유추해보고자 한다.

 

   색을 보고 느끼며 판단하는 방식은 대단히 개인적이지만 색채 감각과 색채 체험은 객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 요하네스 이텐 Johannes Itien

 

   색이란 무엇인가? 각각의 색이 어떻게 생기며 무엇을 상징하고 또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느낌을 이끌어내는지 살펴보자. 모든 색은 빛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빛은 여러 가지 파장으로 이뤄져있는데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 남색. 보라색으로 나름의 파장을 가진 조합이다. 빛의 스펙트럼을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 보여주는 파장들 중 빨강색 파장이 가장 길며 보라색으로 갈수록 짧아진다. 빛이 물체에 닿을 때 어떤 파장은 물체에 흡수되고 어떤 파장은 반사되는데 우리가 보게 되는 색이란 흡수되어 버린 파장은 느끼지 못하고 물체가 반사시키는 파장만을 지각하게 되는 것이다.

 

 

   색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우주를 이루고 유지하는 궁극의 요소와 기운을 살펴 그 이론을 삶과 죽음은 물론 정치에까지 대입해 썼는데 음양오행에서 비롯된 것이다.

   음과 양은 잘게 나뉘어 겉은 양이되 속은 음인 ‘외양 내음’, 겉은 음이되 속은 양인’ 외음 내양’, 양이 변하여 음이되는 ‘양변음’, 음이 변하여 양이 되는 ‘음변양’ 등으로 점차 나뉘고 쪼개져 수많은 괘를 이루는데 색도 그와 같이 보았다. 오행은 목木, 화火, 토土,금金,수水로 계절,방위, 천간,지지,오색 등으로 각각 구분되었는데 그 중 오색을 보면 목木은 청파(동東, 봄, 신맛, 인仁), 화火는 적赤(남南. 여름, 쓴맛,예禮), 토土는 황黃(중앙中央, 사계절, 단맛. 신信), 금金은 백白(서西 가을. 매운맛, 의義), 수水는 흑黑(북北, 겨울, 짠맛, 지智)으로 보았다.

   이 중 백색과 흑색은 무채색이고 청색, 적색, 황색은 모든 색의 기본이 되는 삼원색이다. 삼원색은 다른 어느 색으로도 만들 수 없는 고유한 색이며 이 삼원색을 섞으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는 기본요소다. 오행에서 비롯된 오색 등은 나름의 기운이 있고 오방,계절,성정, 맛, 곡식 등으로 서로 연결고리를 가지며 제각각 특징과 쓰임, 나타나는 현상이 다르므로 색을 쓰는 데 있어서도 그 성질을 구분했다. 음양오행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각각의 기운이 맡은 역할이 따로 있으되 어느 것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혹은 옳다거나 그르다고 나누어 취하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운이 모여 어느 한 극단으로 치닫지 않으면서 섞이고 어우러져 균형을 이루거나 꼭 알맞게 자리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동시에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우거나 더욱 돋보이는 것을 제일로 쳤다. 이른바 상생과 중화다.

   음양오행을 보면 예로부터 색 본연의 성질과 색이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고유한 색이 어떤 성질을 가지는지, 또 한 가지 이상의 색이 만나 서로 상생과 상극, 중화의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에 이르는지를 살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오늘날 드물지 않게 이루어지는 색채심리나 색채치료 또는 미술치료와 서로 통하는 바가 많다. 색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널리 관심을 끌었으며 근래에는 색을 이용한 심리적 치료와 함께 집이나 사무실, 학교, 병원, 공원 등의 일상생활과 주변 환경에서 색을 이용한 성격적 보완 또는 교정의 한 방식으로까지 쓰인다.

 

   모든 색은 완벽한 독립 공간에 홀로 존재하지 않은 한 고유의 성질을 지킬 수 없다. 어떤 한가지 본래 색이 어디에 어떻게 놓이는가에 따라 사뭇 다른 성질로 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고유의 색을 변화시키는 것은 색에 어느 정도의 강도를 지닌 빛이 쪼이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밝은 빛을 비추면 빨강으로 보이는 색채도 빛의 세기를 줄여나감에 따라 어두운 암적색을 띠다가 빛이 사라지고 나면 검정색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느 두 가지 색이 옆에 자리하면서 생기는 변화 중 색상환에서 마주보고 있는 두 가지 색을 맞댄 보색대비는 서로의 색을 가장 순수하게 생기 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그것은  양극단인 보색간 의 관계에서 모든 색 파장의 자극을 균형 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서로의 색상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맞댄 색의 채도를 더욱 높여주기 때문이다. 보색대비는 동시에 명도대비 현상도 따라오게 되는데 예를 들면 보색인 노랑과 보라는 색 자체가 지닌 명도 차이가 커 명도대비도 이룬다. 또 색상환에서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한난대비정後對比 현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보색대비 혜色對比는 순색에서만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채도가 낮은 중성에 가까운 색에서도 그 효과가 잘 나타나게 되고. 따라서 채도가 낮은 색들을 주로 사용할 때 탁한 색들 가운데서도 생기를 불러 일으키는 효과를 내기 보다는 보색대비를 쓰는 것이 흐리고 답답하고 우중충한 느낌을 줄여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만들기에 적절하다.

 

 

   옛 공예품의 여러 색 쓰임

   색은 밝은 색과 어두운 색(명도), 맑은 색과 탁한 색(채도),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 (한난)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옛 생활용품의 색채 특징을 보면 재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여성용품과 각종 예식용 물품이나 안방의 생활용품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칠보와 자수와 화각에서는 생동과 생명력이 한껏 뿜어져 나오는 명도대비와 채도대비,보색대비가 강한 원색이 쓰였는가 하 면, 도자기 베갯모와 양념그릇 등의 도자기에서는 고상하고 맑으며 소박하고 차분한 흰색과 옅은 청색계열이 주를 이뤘고, 사랑방용품 및 장롱, 궤,  함,표주박 등에서 주로 보이는 나무제품에서는 진중하고 점잖고 묵직한 어두운 갈색계열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러 생활용품의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색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공통점은 여러 색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는 데에 있다.

 

 

   옛 여인들의 색

   칠보는 뒤꽂이, 비녀, 노리개, 합, 족두리 장식 등에 쓰였다. 이들은 다 여성용품들로 무척 맑은 채도와 밝은 명도를 가진 색 조합으로 이루어졌으며 간혹 금에 올린 칠보도 있으나 주로 은 위에 올렸다. 은은 금이나 황동 같은 다른 금 속에 비해 색이 서늘하고 차가우며 제 스스로 뛰쳐나가거나 두드러지기보다는 얌전하게 자리를 지키며 다른 색의 말을 다소곳이 들어주고 부드럽게 품는 성질의 온건한 회색 계열이다. 그러므로 칠보가 아무리 은 위로 요란하게 올라가더라도 칠보 물품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시끄럽거나 현란하게 보이지 않도록 하며 오히려 칠보의 화려함이 지나쳐도 경박하게 보이지 않도록 다잡이 역할을 해준다. 그리하여 칠보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색채들은 마음 놓고 은 위에서 한껏 제 강렬한 몸짓을 부려놓을 수있는 것이다. 화려함과 소박함. 역동과 고요, 뛰쳐나가는 힘과 붙들어 매는 인력, 뻗어나가는 가지와 버티는 뿌리 같은 균형과 조화의 미의식이 엿보

   이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활동적으로 뛰노는 어린아이와 집에서 맞이하는 어머니의 모습 같이 맡은 역할이 따로 있고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을 만든다.

   그런데 여러 가지의 칠보를 보자면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같은 칠보라도 어떤 것은 명도와 채도가 높은 난색계열의 원색을 쓰고 또 어떤 것은 약간 누그러뜨려진 한색계열의 원색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귀이개인데도 위의 귀이개는 더욱 도드라지는 색을 썼고 아래의 귀이개는 화려함 속의 점잔을 차린다. 두 귀이개의 차이점은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을 쓴 귀이개가 한눈에 봐도 기법에서나 전체적인 조형미,기술적으로 떨어지는 솜씨고 그에 비해 아래의 귀이개는 기술적인 면에서나 색상 배치와 조형적인 면에서 더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이는 필시 사대부나 반가의 아녀자가 쓴 물건일 것이다. 난색의 성질은 명랑하고 가벼우며 앞으로 튀어나오는데 한색은 차분하고 새침하며 뒤로 물러선다. 난색계열의 순색을 쓴 귀이개와 원색이면서도 한색계열로 차분하게 살짝 가라앉힌 칠보를 얹은 귀이개에서 느껴지는 차이점을 보면 순색 그대로 쓴 귀이개가 상대적으로 더욱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며 화려함 자체에 한껏 들떠있어 요란하고 가볍게 느껴지는 반면 한색계열로 채도를 가라앉힌 귀이개는 전체적으로 원색을 써서 화려함을 유지하면서도 일견 맑고 순정하며 청초한 기품을 느끼게 된다. 이 또한 화려함을 즐기되 지나치지는 않으려는 조화와 절제의 색채 미의식이다.

 

   또한 칠보비녀와 칠보뒤꽂이, 칠보귀이개는 그 자체만으로도 조형이나 배색에서 충분한 아름다움을 갖추었지만 무엇보다 그 물건들이 자리하는 곳은 동백기름을 발라 곱게 빗어 땋고 쪽진 낭자머리임을 되새겨야 한다. 그 물건을 만든 장인도 낭자머리에 자리할 것을 상상하여 만들었을 테고 물건을 주문하거나 삯돈을 치르고 사던 이도 그랬을 테니 시대를 건너뛰어 우리 앞에 놓인 물건을 볼 때도 당연히 낭자에 꽂힌 모습을 상상하여 봐야 한다. 단순히 칠보 공예품만을 볼 때와 머릿기름을 발라 반지르르하니 윤기가 흐르고 동그스름한 검은 머리 끝 쪽진 낭자에 꽂힌 모습의 차이는 무척 크다. 머리통의 큰 둘레며 너비와 칠보용품의 작고 오종종한 면적대비, 새까맣고 반지라운 머리의 바탕에 견주어 높은 명도와 채도의 칠보가 자리함으로써 마치 칠보는 밤하늘에서 깜박거리는 별처럼 더욱 빛을 발! 하고 머릿결은 더욱 검고 곱고 깊이 있게 되는 상호 대조와 조회*의 기운을 주고받는 것이다.

 

   자수용품은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 면을 채워나가며 지극한 정성을 들여 만드는 것이다. 여느 생활용품과 달리 이상하리만치 원색의 조밀한 배치를 통한 화려함으로는 따를 물건이 없을 정도로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을 좁은 면에 빼곡하게 썼다. 화면구성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미술품에서

   흔히 통용되던 넓은 여백으로 인한 편안한 느낌과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으로 채울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데 비해 헐거운 구성은 배제되고 화면을 가득 채워 마치 단청에서와 같은 색 배치로 색끼리 서로 맑고 밝은 다채로움을 강조하며 조형적인 면에서도 독특한 화면연출을 보여준다. 자수는 관복의 흉배에서처럼 오색실과 금사,은사로 권위와 지위를 자랑하듯 드러내는 데 이용되기도 했으나 생활용품에서는 주로 여성용품과 안방치레에 쓰였다. 자수는 소재 자체가 귀하고 공급이 쉽지 않은 진주, 산호, 옥,비취. 세공과는 달리 접근하기 쉬운 소재고 무엇보다 직접 수를 놓는 노동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쉬 배워 자수 본을 이용해 만들어낼 수 있었으므로 서민들이 틈틈이 깜을 내 즐기기에 알맞아 신분이나 살림살이에 크게 구애 받지 않으며 화려함을 즐겼다.

   자수에서 보이는 색은 채도가 높고 따뜻한 계열의 색을 한껏 써서 술과 음식이 넘치는 흥겨운 잔치를 보는 듯하다. 자수를 쓴 생활용품의 종류로는 베갯모, 굴레,방석,댕기. 주머니,보자기,인두판. 버선, 골무,버선본 주머니,바늘쌈,수저집 등이 있는데 수놓은 물건이 여러 가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색의 쓰임은 한결같이 화려하여 잇몸을 다 드러내고 웃는 듯 명랑하다.

   자수는 순색의 빨강과 함께 초록, 연두,노랑,군청, 보라색을 함께 놓아 명도대비. 채도대비, 한난대비가 더욱 활발하게 쓰여 각각의 색이 더욱 빛나 보이도록 배치되었고 전체배색에서도 빨강색이 특히 도드라지게 주를 이루며 그 빨강색이 명도와 채도가 높은 원색이어서 따뜻하고 보는 이의 기분을 즐거이 충동질하고 한껏 떨쳐 일어나게 하는 색이다. 빨강색은 칠해진 바탕에서 더 튀어나오는 색으로 실제 배치된 면보다 더 넓어 보이면서도 안으로 끓어오른다. 연상할 수 있는 사물과 감성은 살아서 퍼덕이는 피와 생명력 또는 태양과 불,사랑의 결합,기쁨과 적극적인 의지와 욕망을 되새겨 굳히게 돕거나 자극하며 순색일 경우에 그 영향이 더욱 커지는데 자수에서 특히 많이 쓰인 이유는 그 기운을 이용해 삶을 더욱 즐겁고 활기차게 하고 싶은 뜻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자수의 생명력 넘치는 조형과 배색이 베갯모에 많이 쓰였는데 그 베개를 베고 누웠다면 낮에 있던 근심 걱정을 조금이라도 잊고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이끌었을 것이며 한결 누그러진 마음은 부부의 잠자리로 이어져 많은 자녀를 두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 색채에 대한 이론이 미처 정리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색에 의한 심리적 작용을 모르고서야 어찌 이렇게 쓸 수 있었겠는가 싶다.

   머리모양과 칠보에서처럼 베갯모에서도 배색과 조형의 균형이라는 면에서 눈여겨볼만한 점이 있다. 베갯모는 자수를 놓은 것이 가장 많지만 그 외에도 목각, 상아, 화각,자개 등 여러 재료를 이용해 만들기도 했는데 크기도 아담하고 그 쓰임도 침구라 남다른 맛이 있어 아껴 수집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그러나 베갯모를 볼 때 흔히 베개 양끝에 마주 대는 화려한 꾸밈새 에만 눈길을 주는데, 화려하고 현란한 색채로 생명력이 퍼덕이는 베갯모 양끝의 조형을 이어주는 베갯잇의 크고 빈 공간을 함께 본다면 더 확장된 조형미와 옛사람들의 미의식을 발견할 것이다. 베갯잇과 베갯모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베개와 이불의 조형,화려한 이불보와 텅 빈 담요의 배색,침구와 안방의 구조로까지 시각을 넓히면 또 다른 조형미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사랑방용품과 나무

   흔히 나무에는 벌레가 파고들어가 갉아먹는 것을 막고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도록 옻칠을 했는데 옅게 칠해 붉은 밤색으로 중후하면서도 화사한 색을 내기도 했고 여러 번 칠해 고동색을 내 깊고 차분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옻칠로 짙은 고동색을 내 자칫 무겁고 칙칙해 보일 수 있는 사랑방용품과 안방용품 가구는 자물쇠 앞바탕이나 광두정,경첩,거멀쇠 등의 쇠붙이 장석을 달아서 쓰임에도 마땅하고 세월에 따라 물품이 망가지는 것을 보호하면서 계절에 따른 습도나 온도의 차이로 나무가 뒤틀리거나 쪼개지지 않고 애초 만든 모양대로 붙잡아매는 노릇도 하며,나무와 쇠를 포개놓음으로써 쓸모는 물론 조형과 배색에서도 조화를 이루려는 뜻이 또렷하다. 안방에서 쓰는 장롱과 궤에서는 장석으로 주석과 백통을 많이 썼는데 주석은 황동처럼 금색이 나 바탕이 되는 나무의 색이 어울려 더욱 따뜻하고 화려하며 백통은 은색이 나 나무 바탕색을 더욱 짙고 깊게 보이도록 해 전체적으로는 화려하면서도 맑고 차분한 분위기를 낸다. 남성들이 쓰던 사랑방용품의 소재는 대개 나무를 썼다. 덧붙인 재료로는 옻칠한 나무 위에 조개껍질을 갈고 쪼개 상감으로 붙인 나전칠기, 거북이 등껍질을 갈아 붙여 무늬를 낸 대모, 물소 뿔을 불려서 붙이고 그 위에 석채안료로 그림을 그린 화각, 또는 지통과 필통 등의 소품에 대나무를 이용하기도 했으나 화려한 그림이 들어가는 화각이 안방용품장롱에 더 들어가는 데 비해 사랑방용품에서는 소품에서 약간 쓰일 뿐 그 중 가장 흔하게 쓰인 재료는 역시 나무고 화려한 치장을 삼갔다. 나무는 금·은을 포함한 쇠붙이,도기,자기,돌이나 보석과는 달리 그 기운이 무르고 부드럽고 푸근하며 따뜻한 기운을 품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한 기분이 들게 하며 느티나무, 참죽나무,오동나무,돌배나무, 소나무, 먹감나무 등 수종에 따라 여러 가지 다채로운 나이테 결과 색채를 보여 그 자체로도 충분한 조형미를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재료다. 또 나무는 소재를 구하기 쉽고 다듬어 쓰기도 어렵지 않아 널리 이용되었다. 나무가 천연으로 갖는 아름다움은 자른 면을 곱게 다듬어 짜고 그대로 두어도 충분하지만 아름답게 꾸미거나 재질 보호를 위해 옻칠을 하거나 콩기름. 동백기름 등의 식물성 기름을 바르거나 불에 그슬려 갈아내는 낙동법을 쓰기도 했다. 낙동은 나무를 불에 그슬린 다음 갈아내거나 인두로 지진 후 문대서 나이테가 있는 단단한 부분은 검은 색을 띤 그대로 남고 나이테와 나이테 사이 부드러운 부분은 쉬 갈려 옅어지는 기법인데 이렇게 하면 나무가 갖는 나이테 무늬가 한층 강조되며 나무 면이 나이테에 따라 올록볼록해져 입체적으로 돋보이고 색이 짙게 검어지는 손질법이다.

 

   사랑방용품에는 주인인 남성의 성정에 맞추어 화려함과 치장은 밀쳐놓고 기개와 검소함이 강조되어 장롱, 앞닫이. 반닫이의 경우에도 여성용품과는 차이를 보인다. 안방에서 쓰는 궤와 장롱은 화각,화초를 곁들인 그림을 쓴 데 반해 사랑방에서 쓰인 궤와 장롱에는 드물게 자개를 상감해 넣은 나전칠기장롱이 보이기는 하나 멋을 부린 경우라고 해야 앞면에 글씨를 새겨 넣거나 단순한 문양과 그림을 새겼는데 그조차도 안방장롱에 견주면 인색하다 싶을 만큼 아꼈다. 자물쇠 앞바탕, 광두정, 들쇠, 경첩, 거멀쇠,여러 귀장식 등의 쇠붙이 장식에서도 안방용품에서는 주석이나 백통을 써서 더욱 화려하게 만들었으나 사랑방용품에서는 주석과 무쇠를 써 배색에서 진중함이 풍기도록 했고 그조차도 장석 수를 줄여 경첩과 자물쇠만으로 마무리해 차분하고 검소하게 만든 예가 많다. 이런 장을 보노라면 깡마르고 허리 꼿꼿한 기개를 지닌 선비가 눈앞에 그려진다.

 

 

   맞섬과 어우러짐

   옛 생활용품의 색 쓰임은 살펴본 것처럼 재료에 따라 사뭇 다르다. 자수와 칠보 화각,화초는 원색적이며 피 끓는 젊은이 같고 장롱, 궤. 책장. 경상 등의 나무로 만든 사랑방 물건들은 점잖고 말수 적은 선비 같으며 안방의 장롱과 궤는 곱고 맵시 있는 여인네를 그대로 닮았으며 도자기는 맑고 새침한 새색시 같다. 어찌 보면 저마다 다른 모습이어서 일관성 없는 색 쓰임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지켜보면 어느 것이든 그 물건의 쓸모,물건이 놓이는 자리와 둘레,물건을 쓰는 이에 꼭 알맞은 색을 골라 썼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여러 작은 요소가 모여 더 큰 하나를 이루는 조형미와 색 배치의 원 리를 장인과 그 시대 사람들의 미의식을 꿰뚫고 있었기에 이처럼 적절하게 썼음을 알 수 있다. 베갯잇과 베갯모,머리모양과 칠보비녀,옻칠 바탕과 장석 또는 자재,장롱과 화각의 관계는 넓은 면과 좁은 면,텅 빈 여백과 가득 찬 빽빽함. 소박함과 화려함,지루함과 흥겨움,휴식과 축제,침묵과 발언,날숨과 들숨 같은 대조면서 동시에 공존이 어울리는 미학이다.

   그 대조와 공존은 색에서도 밝음과 어두움, 맑음과 흐림,따뜻함과 차가움이 만나 어우러진 음악적 가락과 같다. 장단長확 고저|대低, 대소大小,강약强弱이 만나 마주서기는 하지만 밀치거나 다투지 않고 오히려 서로 손을 맞잡아 몸을 기대기도 하고 마음껏 튀어 오르도록 아래에서 받쳐주기도 하며 극과 극이 만나되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멋들어진 화음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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