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전시
쉬포르 쉬르파스라는 이름을 짓고 이 운동을 주도한 것은 박물관장, 갤러리스트, 비평가가 아닌 예술가들 자신이었으며, 이 운동은 지금까지도 주목할 만한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전시가 다루는 시기는 사상, 정치, 사회적으로 정신없는 변화와 극심한 혼란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전시된 작품들은 화려하고 추상적이며 단순하지만 결코 평면적이지 않다. 이 14명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삶의 본질을 담아 예술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
이 시기 프랑스는 전쟁 이전의 위상을 되찾고 식민지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프랑스 정부의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동남아시아와 알제리에서 독립 운동이 격렬해졌고, 지역 단위의 소규모 봉기로 시작된 독립 운동이 전면적인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그 결과 젊은 시민들은 정부, 교육, 문화 기관, 문학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프랑스의 낡은 정상성을 사회적 불평등과 착취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젊은이들의 자본주의와 소비주의의 영향, 기존 제도의 질식할 듯한 압박에 대한 불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1968년 학생들의 소르본 대학 점거를 시작으로 확산된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프랑스 경제가 사실상 마비되면서 불안이 산업 현장으로도 확산되었다. 화이트 컬러, 블루 컬러 노동자들이 모두 참여한 이 시위는 프랑스 사회 문화에 있어서 특기할만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위의 영향은 정치적이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것이었지만, 과거 세대에 의해 강요된 전통적인 구조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고, 그런 정치적 불만을 기존의 정치 채널을 거치지 않는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시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
예술가들은 순회 전시에서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갤러리 벽이 아닌 야외에 작품을 전시했다. 프랑스 남부 마을 곳곳에 작품을 매달거나 기대어 놓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작품과 교감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즉흥적인 전시들은 미술관이나 공식적인 기관의 승인 없이 진행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사진을 통해 그들의 날것 그대로의 실험 정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971년 다니엘 드죄즈(Daniel Dezeuze), 루이 칸(Louis Cane), 뱅상 비올레스(Vincent Bioulés), 마크 드바드(Marc Devade)가 창간한 잡지 <회화 이론 노트(Cahiers, Peinture Théorique )>는 이들의 사상을 전파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이들의 사상은 미니멀리즘, 마르크스주의, 마오쩌둥 주석 어록, 클레멘트 그린버그, 프로이트, 미국 색채 회화 등 다양한 사상, 사조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잡지 제작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여러 멤버들이 이탈하거나 항의하며 그만두는 와중에도 13년 동안 잡지를 발행했다.(...) 이 예술가들은 모두 비슷한 정치적 문제 의식을 공유했으며, 형식적 언어를 배제하고 고도로 정교한 철학적 접근법을 견지했다. 그들이 탄생시킨 예술은 결코 과도하지 않았으며, 항상 회화나 조각의 물성을 인식하면서 추상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표현함으로써 예술을 창작하는 실제 행위를 능동적으로 탐구했다. 고급/저급 담론은 이 운동 전체의 본질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논쟁이었다. (...)
클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 루이 칸(Louis Cane), 앙드레 피에르 아르날(André-Pierre Arnal), 파트릭 세투르(Patrick Saytour)는 캔버스를 전통적인 회화의 경계를 짓는 스트렉처에서 해방시키면서 더 이상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천명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스트렉처로 고정되지 않은 느슨한 캔버스를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쉬포르/쉬르파스는 전통적인 방식에 저항하는 동시에 과거의 가치 있는 개념을 신중하게 유지하면서 주제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의 전환을 표현하는 추상 언어를 개발하여 전통 회화의 이미지를 대체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장인 정신에 찬사를 보내며 직조, 매듭, 염색, 접기 등 가정이나 작업장에서 이뤄지는 수공예 기법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쉬포르 쉬르파스의 예술적 구성 요소 중 하나는 불필요한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가정적인 검소함이다. (...)
쉬포르 쉬르파스의 예는 예술가들이 더 이상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족쇄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자유로운 예술 창작 방식을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들의 사례는 새로운 아이디어란 그 표현에 가장 적합한 새로운 수단을 찾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은 느슨한 연대 속에서도 솔직함과 즐거움을 담은 예술 창작법을 찾아냈다. 그들 중 상당 수는 그런 높은 수준의 예술적 기준을 고수하는 삶과 작업을 위해 결코 작지 않은 대가를 치뤄야 했다.
월리스 휘트니(Wallace Whitney)
쉬포르 쉬르파스
쉬포르 쉬르파스